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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결혼 기지촌 여성들 보살펴달라는 ‘용감한 외침’ 기억할게요” 4T124

4hapiness 2023. 5. 7. 13:04

“국재결혼 기지촌 여성들 보살펴달라는 ‘용감한 외침’ 기억할게요”

국제결혼으로 찾으면 쉬워서 추가했다.

 

2022, 1월 9일 인권활동가 엄숙자씨가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향년 74.

 

지난달 교통사고 숨진 고 엄숙자 할머니

16살 평택 안정리 기지촌에 팔려가

미군에 '성(性)' 팔던 '기지촌 여성'으로 한 평생

미군 사이서 낳은 아들 해외로 입양

연극 '숙자이야기' 출연 등 '기지촌' 실상 세상에 알린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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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견 ;; 조선이 정치를 잘못해서 청나라에 끌려갔던 많은 여성들이 조선으로 돌아 온 여성들을 환향녀 還鄕女라 불렀고, 나중에 선비 색기들은 화냥년으로 불러 전락 시켰다, 일본에의한 위안부 여성들도, 양공주 모두 한국 역사의 희생양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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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나기 2주 전까지만 해도 유모차를 두 발 삼아 우리 햇살사회복지회를 다녀갔던 터였다.

항상 여유롭고 웃는 얼굴에 마스코트인 커다란 챙이 달린 모자에 선글라스까지 쓰고 다니던 ‘엄숙자 이모’를 다시 볼 수 없다니, 지금도 믿기지가 않는다.

 

이모는 2002년 가을 우리 햇살센터로 찾아온 뒤 매주 열리는 화요 정기모임에 거의 빠지지 않고 나왔고, 늘 맨 앞자리에 앉아 경정하는 모범생이었다.

<숙자 이야기> (연출 노지향 대표)의 주연 배우로 네 차례나 연극 무대에 올랐고,

뮤지컬 <그대 있는 곳까지> (작·연출 이양구)에서는 전문 배우들에게 뒤지지 않는 탁월한 연기력에 연출가와 스태프들의 찬사를 받았다.

그때 꿈 속에서 어린 시절 헤어진 아들을 만나는 장면을 반복해서 연습하던 도중 진짜로 미국에 있는 아들의 소식이 닿았던 날은 특히 뭉클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사진,

2015년 8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제3차 세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기림일 주간 공동행동 행사 때 단상에서 발언중인 고 엄숙자 활동가. 햇살사회복지회 제공

 

엄숙자는 무엇보다도 용기있는 인권활동가였다.

2015년 8월12일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제3차 세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기림일 주간 공동행동 행사 때 단상에 올라 '일본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지난 2021년 12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로비 1층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 10돌 기념행사’ 때의 외침이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고인은 누군가 할 일이라면 먼저 나서던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2016년 국제결혼가정선교 전국연합회 초청으로 미국 세인트루이스 '평화의 집'에 갔을 때 국제결혼여성들의 수련회에서 기지촌 여성으로서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서슴없이 털어놓았다.

 

그녀는 시카고와 애틀란타에서도 외국인들 앞에서 당당하게 기자회견을 했다.

한국내 기지촌 미군 ‘위안부‘ 국가배상청구소송에 대한 재판이 열릴 때마다 빠짐없이 법원에 참석했고, 국회에서 기지촌여성지원법안 마련을 위한 입법공청회, 경기도와 평택시 미군 위안부 지원조례 제정을 위한 토론회에도 동참했다.

 

고인은 1948년 경북 문경에서 출생과 동시에 생모를 잃었다.

이후 새엄마와 이복동생들 틈에서 견디지 못해 집을 떠나 식모살이를 시작으로 전북 군산의 식당에서도 일했다.

20대 때 기지촌으로 들어가게 된 것은 “그 깡패들이 나를 송탄에다 팔아 먹었기 때문”이라고 평소 얘기했다.

“등록 안하고 (성병)검진을 안받다가 붙들렸어. 평택(평택보건소, 일명 몽키하우스)에 가(서) 살았어.”, “거기는 병원 감방이야”, “평택시장 옆에 감방에 장미방, 국화방… 있었어”, “한 홀에 모아서 미군들에게 서비스 잘하라고….” 등등 생생한 증언을 들려주기도 했다.

 

기지촌 여성들은 ‘깨끗한 상태로 미군에게 제공되기 위해’ 일주일에 2번씩 성병 검진을 받아야 했고, 국가와 지자체는 여성들을 불러 모아 ‘미군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것과 ‘외화를 벌어들이는 당신들은 애국자’라는 교육도 했다. 기지촌 여성들은 해방 이래 한국 경제와 안보의 도구였다.

 

지난 2012년 8월31일 열린 기지촌여성인권연대 발대식에 참석한 고인은 “젊었을 때 우리가 늙으면 정부에서 집도 지어준다고 그러더니…, 정부는 기지촌 할머니들을 보살펴달라”고 호소했다.

 

2020년 5월 어렵사리 ‘경기도 기지촌여성지원 등에 대한 조례’가 제정되었지만 아직까지 여성들에게 아무런 실질적인 혜택이 없다.

‘애국자’라고 치켜세운 정부와 지자체는 언제쯤 기지촌 여성들에게 빚을 갚을 것인가?

용기있는 엄숙자의 외침에 언제 답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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